싸플 뉴스

SP NEWS

[기고] 기획연재ㅣ‘어쩔 수가 없는’ 시대를 넘어 - 마음을 짓는 하이퍼 스페셜리스트를 위하여

페이지 정보

작성일 26-03-18 15:38

본문

싸이트플래닝건축사사무소 한영숙 대표님께서 부산건축사신문에 기고를 하였습니다.

출처 : 26.02.01 부산건축사신문

기획의도ㅣ이 글은 AI와 기술 발전으로 사람들이 점점 흩어지고 고립되는 시대에, 공간이 다시 사람을 만나게 하는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역세권과 15분 도시 같은 사례를 통해, 기술이 효율만이 아니라 이웃과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건축사는 단순히 건물을 짓는 사람을 넘어, 인간의 마음과 공동체를 설계하는 존재로 확장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총 2회 연재되며 이번 호에서 ‘마음을 짓는 하이퍼 스페셜리스트를 위하여’가 소개되고, 다음 호에서는 ‘행복한 이웃을 만나는 15분 도시를 위하여’가 연재될 예정이다.

지난 연말에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 없다>를 보면서 우리 시대가 마주하고 있는 변화에 대해 실존적 공포를 미학적으로, 그리고 유머러스하게 파고든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영화의 도입부에서 주인공이 나직하게 읊조린다. "외국에서는 사람을 자를 때, 도끼로 목을 친다고 한다." 나무의 생명을 끊는 도구인 도끼가 인간을 향할 때, 그것은 단순한 신체적 훼손이 아니라, 한 인간의 생명줄과도 같은 ‘직장’이 날아가는 해고의 상황, 자본의 논리 앞에서 인간의 쓸모가 거세되는 상황에 대한 서늘한 서양식의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끔찍하지만, 그래도 그 장면에는 ‘도끼를 든 사람’이라는 행위자는 인간이었다. 적어도 인간 대 인간의 비극이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우리를 더 깊은 절망과 완전히 낯선 세계가 만들 세상에 대해 공감되면서 등골이 서늘해졌다. 더 이상 인간이 도끼질을 하지 않는다. 대신 기계 팔을 가진 로봇이 등장해 무자비하고 정교한 동작으로 나무를 꺾어버린다. 그 압도적인 힘과 속도, 그리고 감정이 거세된 효율성 앞에서 인간의 쓰임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한없이 슬퍼졌다. 이제 인간이 인간을 해고하는 단계를 넘어, 로봇과 AI가 인간의 목을 꺾는 시대, 인간의 노동과 존재 가치 자체가 송두리째 대체되는 특이점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어쩔 수가 없는’ 거대한 파도 앞에 서 있다. 생성형 AI와 피지컬 AI가 결합된 로봇 기술로 진화된 세상은 인간에게 더 이상 선택권을 주지 않는 상황을 계속해서 만들어 낼 것이다. 효율성과 최적화라는 명분 아래, 공간을 다루는 우리 건축사들 또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기계가 나무를 꺾는 이 시대에, 우리가 계획하는 공간은 과연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나는 약 10년 전 역세권 복합개발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쯤 부산일보 기고를 통해 '기체도시(Cloud City)'라는 개념을 화두로 던진 적이 있다. 산업혁명 이후 근대 도시는 공장, 학교, 주거지가 물리적으로 고정된 ‘고체(Solid)’의 성격을 띠었다.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정해진 장소에서 소비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개인의 손에 쥐어지고 디지털 네트워크가 시공간을 압축하면서 도시는 급격히 기체화되었다. 클라우드(Cloud)와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은 더 이상 물리적 장소에 구속받지 않는다. 그들은 기체 분자처럼 도시를 유영(Swimming)한다. 내 손안의 기기를 통해 나에게 딱 맞는 취향을 소비하고, 내가 원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며, 물리적으로는 같은 공간에 있어도 정신적으로는 각기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개인 맞춤형 알고리즘은 우리를 더욱 정교하게 파편화시켰고, '나 홀로' 누리는 삶은 편리함을 넘어 하나의 생존 방식이 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짙은 그늘이 있다. 사회적 관계망에서 떨어져 나간 개인들은 ‘고립’이라는 섬에 갇히게 되었다. AI 시대의 도래는 이 고립을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고, 이제는 ‘쓰임’이 사라지는 인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로봇이 나무를 꺾는 세상에서, 인간은 서로에게조차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릴지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도시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강력한 중력장(도시 마그넷)'을 만드는 것이다. 기체처럼 흩어지는 개인들을 다시 끌어당겨 물리적으로 만나게 하고, 우연한 접촉을 통해 새로운 혁신과 관계를 만들어내는 구심점, 바로 'Urban CORE'가 필요한 시점이다.

9c83766647b21a2f8a12227f9d550263_1773817826_707.jpg
△ 우연한 만남이 일어나는 록펠러센터

9c83766647b21a2f8a12227f9d550263_1773817865_7788.jpg
△ 우연한 만남이 일어나는 링컨센터

유영하는 개인들이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 어딘가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 지점은 시공간이 압축된 ‘역세권’일 확률이 높다. 세계 주요 도시들은 이미 역세권을 단순한 환승 통로가 아닌, 도시의 심장이자 뇌로 재설계하고 있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사례는 뉴욕의 오큘러스(Oculus) 센터다. 9.11 테러의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에 세워진 이 건축물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설계로 마치 어린아이의 손에서 날아가는 새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곳은 뉴저지를 잇는 PATH 기차와 뉴욕 지하철이 만나는 교통 결절점이지만, 단순한 기능을 넘어선다. 라데팡스의 교통지하광장이 기능적 연계에 집중했다면, 오큘러스는 이를 거대한 조형적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 오픈형 공간으로 개방했다.

9c83766647b21a2f8a12227f9d550263_1773817895_3519.jpg
△ 뉴욕 월드 트레이드 센터 교통 허브(오큘러스)

순백의 갈비뼈를 연상시키는 구조물 사이로 쏟아지는 자연광은 지하 깊숙한 승강장까지 닿으며, 지하 공간 특유의 폐쇄성을 완전히 지워버린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단순히 열차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쇼핑몰(웨스트필드)을 거닐고, 예술 작품을 감상하며, 9.11 메모리얼 파크로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걷는다. 죽음과 상실의 장소였던 그라운드 제로가 오큘러스를 통해 빛과 생명의 공간으로 전환된 것이다. 교통 시설이 업무지구(브룩필드 플레이스)와 추모의 공간을 끊김 없이 연결하면서, 상처 입은 도시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흩어진 뉴요커들을 다시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도시의 중심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 변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아름답고 찬란한 미래형 광장으로 기념비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기술적, 제도적 솔루션의 정점을 보여주는 사례로는 뉴욕 허드슨 야드를 꼽을 수 있다. 맨해튼 서쪽의 철도 차량기지 상부를 인공 데크로 덮어 새로운 땅을 만들어낸 이 프로젝트는 버려진 공간을 입체적으로 재구축한 혁신이다. 단순히 평평한 땅을 만든 것이 아니라, 공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그 위에 마천루 숲을 세웠다. 이곳의 성공 요인은 '콘텐츠'와 '제도'의 결합에 있다. 움직이는 예술센터 ‘더 쉐드(The Shed)’는 바퀴가 달린 외피를 통해 공간의 크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다양한 공연과 전시를 수용하고, 거대한 벌집 모양의 전망 구조물 ‘베슬(Vessel)’은 강력한 마그넷이 되어 전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당긴다. 하이라인 파크가 이곳으로 연결되면서 기존 도시 조직과 유기적으로 통합된 점 또한 주효했다.

9c83766647b21a2f8a12227f9d550263_1773817932_2331.jpg
△ 허드슨 야드와 연결된 하이라인

9c83766647b21a2f8a12227f9d550263_1773817960_9139.jpg
△ 베슬과 허드슨야드 복합개발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지구개선기금(DIF, District Improvement Fund)’ 제도다. 통상적인 개발사업은 해당 필지 내에서만 공공기여가 이루어지지만, 허드슨 야드는 개발 이익을 펀드화하여 사업지 밖의 인접한 역세권 지역 전체의 인프라 개선, 공원 조성, 지하철 노선 연장에 투입했다. 강력한 마그넷을 만들기 위해 도시기반시설을 민간이 선투입하고, 조성 후의 재산세 감면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점(Point) 단위 개발을 면(Area) 단위의 도시 재생으로 확장시키는 획기적인 모델이다. 이는 현재 부산의 북항 재개발이나 철도 지하화 주변부 개발에 있어 민간의 활력을 공공의 이익으로 환원시키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런던의 킹스크로스 역세권 개발 또한 놓칠 수 없는 사례다. 19세기 산업혁명 당시 석탄을 나르던 야적장이었던 이곳은 이제 구글 런던 본사와 센트럴 세인트 마틴 예술대학이 들어선 창조의 용광로가 되었다. 이곳의 핵심 전략은 '시간의 결'을 살린 재생이다. 거대한 가스 홀더(Gas Holder)를 철거하지 않고 그 원형 프레임 안에 미러볼 같은 공원과 고급 주거를 조성하여, 장소성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기제로 활용했다. 또한 옛 석탄 창고의 지붕을 서로 맞닿게 연결하여 쇼핑몰로 변모시킨 ‘콜 드롭스 야드(Coal Drops Yard)’는 획일적인 현대 건축이 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한다.

구글 캠퍼스는 철도 선로 위에 지어지며 땅의 여유가 없는 도심부에 입체적 계획을 통해 새로운 구심점을 만들어 냈고, 단순한 부동산 개발이 아니라 대학과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여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육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분수대가 춤추는 그래너리 광장(Granary Square)에서는 예술학도와 IT 개발자, 그리고 지역 주민이 자연스럽게 섞인다. 기체도시의 시민들이 모여서 단순히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고 학습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현장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아시아로 눈을 돌리면 도쿄의 시부야와 홍콩의 센트럴이 있다.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는 좁은 부지의 한계를 수직적 확장으로 극복한 ‘버티컬 시티’의 전형이다. 지하철역에서부터 지상, 그리고 최상층 전망대인 ‘시부야 스카이’까지 이어지는 동선은 도시 전체를 조망하는 시각적 해방감을 준다. 또한 인근의 미야시타 파크는 철도 부지와 도로 상부를 활용해 녹지와 공공시설을 입체적으로 연결했다. 옥상에 조성된 공원은 고밀도 도시에서 사람들이 숨 쉴 수 있는 소중한 '보이드(Void)'를 제공하며, 퇴근길 직장인들이 모여 맥주 한 잔을 기울이는 커뮤니티 공간이 되었다.

홍콩의 경우, 빽빽한 빌딩 숲 사이를 연결하는 공중 보행 데크 시스템이 도시의 혈관 역할을 한다. 홍콩은행(HSBC)과 헨더슨 빌딩 등은 1층(Ground Floor)을 과감하게 비워 공공에게 내어줌으로써 보행의 흐름을 터주고 도시의 숨통을 틔웠다. 사유지임에도 불구하고 벽을 없애고 필로티 구조로 개방하여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통로이자 광장으로 활용하게 한 것이다. 이렇게 세계의 역세권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들이 모이고 새로운 활동을 창출하는 장소로 변신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도시들도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GTX(광역급행철도) 건설, 주요 도심 철도 구간의 지하화 및 상부 개발 논의가 활발하다. 부산의 경우 부산역과 부산진역을 잇는 북항 재개발과 경부선 철도 지하화가 도시의 지형도를 바꿀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변화의 핵심은 물리적 인프라 구축이 아니다. 바로 ‘시간(Time), 공간(Space), 인간(Human)의 재구축’이다. GTX와 고속철도는 이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여 길 위에서 버려지던 시간을 개인의 여가와 자기 계발을 위한 시간으로 환원시킨다. 철도 상부 데크화와 지하화를 통해 단절되었던 도시 조직이 봉합되고, 새로운 가용 부지가 탄생한다. 우리는 허드슨 야드의 사례처럼 이곳을 단순 주거지가 아닌, 업무·문화·상업이 융합된 복합 용도 지구로 조성해야 하며, DIF와 같은 제도를 우리나라 실정에 맞추어 적극 도입하여 개발 이익이 역세권 주변 낙후 지역의 환경 개선으로 흘러들어가게 하는 선순환 구조를 짜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재구축'과 이를 뒷받침할 AI 기술의 활용이다. AI는 이제 도시 계획 단계에서 유동 인구 흐름, 탄소 배출량, 에너지 효율을 사전에 시뮬레이션해 준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운영(Operation)'이다. 하드웨어가 완공된 후, 그 안에서 AI가 도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교통 신호를 제어하고, 에너지 공급을 최적화하며, 범죄를 예방하는 '살아있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더 나아가, 거대 담론인 역세권 개발과 함께 우리 일상의 미시적 공간 변화도 중요하다. 부산시가 추진하는 ‘15분 도시’는 기체처럼 흩어진 개인들을 동네 단위에서 다시 묶어내는 전략이다. 최근 부산 곳곳에 생겨난 ‘들락날락’과 ‘하하센터’를 보라. 이 공간들이 사랑받는 이유는 화려한 외관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디지털 콘텐츠가 있고, 은퇴한 시니어들이 서로의 재능을 나눌 수 있는 사회적 프로그램이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공간을 단순히 물리적 껍데기로 인식하지 않는다. 인테리어, 주변 환경, 그리고 그 안을 채우는 소프트웨어와 휴먼웨어까지를 하나의 총체적인 경험으로 받아들인다. 건축사가 단순히 '건물'만을 설계하던 시대는 지났다. 도시건축과 콘텐츠의 융합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들락날락에서 아이들이 뛰놀 때 부모들은 육아 정보를 공유하며 연대한다. 이것이 바로 고립된 개인을 다시 공동체의 일원으로 불러내는 방식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로봇이 나무를 꺾는 시대, AI가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에 건축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AI를 직접 사용해 보면 알 수 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구조를 계산하며, 최적의 디자인 대안을 순식간에 생성해 낸다. 과거에 전문가(Specialist)가 오랜 시간을 들여 수행하던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업무들을 AI가 수행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위기임과 동시에 기회다. 이제 우리는 좁은 분야의 기술적 전문가를 넘어, 전체를 아우르고 조율하여 최적의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는 ‘(가칭)하이퍼 스페셜리스트(Hyper-Specialist)’로 거듭나야 한다.

건축 안에서도 다양한 분야가 있고, 그 안에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스페셜리스트로 활동을 하거나 건축, 도시, 조경, 인테리어의 경계를 허물고 통합적인 마스터플랜을 그리는 종합 코디네이터가 되어야 한다. 흩어진 개인들을 모을 수 있는 사회적 조직화를 도모하고, 공간 안에 어떤 콘텐츠를 담아 사람들을 연결할지 기획하는 소셜 퍼실리테이터(Social Facilitator)가 필요한 세상이 되어가고, 점점 더 이 역할을 요구하게 된다. 건축사에게 이러한 역할이 더해질 때 좀 더 세상을 바꾸어 볼 수 있지 않을까?

AI는 효율적인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지만, '어떤 도시가 행복한가', '어떻게 하면 소외된 이웃을 공간으로 불러낼 수 있는가'라는 가치 판단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영화 <어쩔수가 없다>의 로봇은 나무를 효율적으로 꺾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꺾인 나무들을 모아 강을 건널 뗏목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태워 새로운 땅으로 안내하는 것은 로봇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시대의 변화는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변화의 파도 위에서 인간을 위한 따뜻한 공간을 짓는 일은 우리의 선택이다. 기술은 차가워지지만, 공간은 사람들을 위해 더욱 따뜻해져야 한다. 그것이 이 거대한 기체도시의 시대에, 사람의 마음을 짓는 우리 건축사들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9c83766647b21a2f8a12227f9d550263_1773818019_4329.png
△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베슬